예배와말씀

목회서신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우리는 지금 사순절 기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걸어가신 고난의 길을 묵상하고 십자가를 지시며 끝까지 참고 인내하신 예수님의 발자취를 조금이나 따라 가 보고자 노력해 보시고자 다들 애쓰시는 줄 믿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예수님이 공생애 기간 중 보여 주신 온유하신 모습에 대해서 한번 묵상해 보았으면 합니다.


여러분! “온유”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온유한 사람하면 온순하고 얌전하고, 부드러운 사람 정도로 생각을 합니다. 싸우기 싫어하고 양보도 잘 하고 오히려 잘 져주는 사람으로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실 때 청중들의 표정이나 반응이 어떠했을까요? 대부분 이해할 수 없다거나 낯설다는 의아한 반응이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의 식민지 통치를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식민 통치란 경제적인 수탈과 정치적인 학대로 인한 고통을 받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대부분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가 힘이 없기 때문에 당하고 있다는 피해 의식에 젖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간절히 바라고 소망하던 것은 힘있고 강력한 지도자가 나와서 자신들을 로마의 압제로부터 해방시키기를 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간절히 메시야를 기다린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그들이 당한 상황에 의할 것 같으면, 투쟁하도록 독려하고, 싸우도록 앞장 서 이끄는 사람을 간절히 원하던 시대인 것입니다. 독기를 품고서 라도 살아가려는 사람, 무력이라도 사용하여 대항하여 싸우려는 사람이 인정받고, 높임 받고, 쓰임 받는 시대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시대적 상황 속에서, 그런 성품의 사람을 기대하던 백성들을 향해 예수님은 ‘온유하라’고 지금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의아해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니 도대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온유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우리는 무한 경쟁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가 앞서 나가지 못하면, 남들에게 뒤쳐지기 시작하면 끝나고 마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이 세상에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며 살아가고 있는 것 아닙니까? 다른 사람을 제쳐야 내가 사는 세상이니, 나 스스로에게뿐만 아니라 우리의 자녀들에게도 계속해서 그런 생각, 그런 사상을 심어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 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삶과 신앙의 괴리를 만나게 됩니다. 이 세상은 정말 독하게 마음 먹고 살아야 하는 세상인데, 성경의 가르침은 온유하게 살라 말씀하고 있으니 도대체 우리더러 어떻게 살라 말씀하는 것인지 헷갈려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신앙 따로, 삶 따로, 겉과 속이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크리스천으로서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과 신앙의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모습이 다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온유에 대해 제대로 안다면 분명 우리는 겉과 속이 다른 크리스천의 모습이 아닌 진정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도 남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우선 성경이 말하는 온유하다는 뜻은 무기력이나 연약함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온유란 말을 헬라어로 『프라우스』(praus)라고 하는데요, 예수님 당시에 이 단어는 주로 세 가지 용례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첫째, 어떤 사람이 병을 앓아 고열로 고생하는데 치료 덕분에 한 순간 그 열이 잡힐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말하기를 ‘이제 괜찮다’는 말 대신에 이제 열이 잡혀 온유해 졌다는 의미로 『프라우스』라고 합니다. 둘째, 사람들이 돌풍 때문에 많은 피해를 입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와중에 일순간 바람이 잦아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말하기를 『프라우스』, 즉 바람이 온유해졌다고 합니다. 셋째, 야생마를 길들이는 과정에서 훈련을 시킬 때, 훈련에 훈련을 거듭해서 야생마가 이제 사람들에게 위협이 안 되고 잘 길들여졌을 때에 『프라우스』, 즉 “온순해졌다”는 단어를 썼습니다. 이 세 가지 경우에 다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힘이 조절(컨트롤)되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에서 이야기 하는 온유한 사람이란 완전한 순종과 완전한 신뢰로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어떻게 하시든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김으로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방법이 최선이고,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을 확신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길들여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이 온유한 사람입니다. 이번 사순절을 통해 우리의 모든 뜻과 생각이, 심지어 우리의 감정조차도 하나님께 길들여질 수 있도록 하나님께 내어 맡기는 시간을 만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주님께서 말씀하신 온유한 자가 받는 복, 땅을 기업으로 받는 축복의 삶을 살아가게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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