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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가 드러날 때


정체가 드러날 때


한번은 지방회에 참석을 했을 때 식탁 위에 겉포장이 벗겨진 티백이 놓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선뜻 먹기가 부담스러웠습니다. 혹시라도 카페인이 많은 것은 아닐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겉포장을 벗겨 놓아 무슨 차인지 모르는 티백은 더운 물에 담가보면 압니다. 더운 물에 찻잎의 맛과 향이 우러나며 ‘정체’를 알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정체’란 평온할 때는 알 수 없지만 뜨거운 물과 같은 고난과 환난에 담기면 그제야 그 근본이 드러납니다.


평온할 때는 누구나 잘 삽니다. 평탄하고 좋은 일이 있으면 누구나 신실합니다. 그러나 병들고, 사고 나고, 억울한 일을 당하는 등 어려움의 광야에 들어서면 비로소 본질이 나옵니다. 그래서 누구든 인생의 광야, 사막을 만나봐야 그 정체가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로 인생의 광야를 만나봐야 한다고 말하면 모두들 “아멘”으로 대답합니다. 그러나 막상 실패하고 고난 당하면 대개는 절망하고 낙심합니다. 분노하고 짜증을 냅니다. 시시비비를 가리려 하고 책임을 전가합니다. 사람을 찾아 다니고 정치질 하는데 에너지를 다 쏟습니다. 올바르게 반응하는 사람들을 별로 못 봤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테스트가 바로 이와 같습니다. 광야의 시간은 하나님께서 내 본질, 내 실력, 내 믿음을 체크하고 점검하시는 때입니다. 광야는 내 본성과 밑바닥이 다 드러나는 곳입니다. 괜찮은 줄 알았던 신앙의 미천함이 발각되는 곳입니다. 나의 ‘정체’가 비로소 드러나는 시간이 바로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어럽고 힘든 광야와 같은 시간을 만날 때입니다.


대한민국 양궁 대표팀의 실력은 대단하기로 유명합니다. 과거 2012년 런던 올림픽 때 이들 대표팀이 최고의 적수로 뽑은 것은 어떤 나라가 아니라 런던의 변덕스러운 날씨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변화무쌍한 영국 날씨에 맞추어 훈련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개막 4일 전부터 이상하리만큼 바람 한 점 없이 쨍쨍하고 맑은 날씨가 이어졌습니다. 도무지 영국 날씨답지 않은 아주 이례적인 날씨가 계속된 것입니다. 그러자 어느 신문 기자가 다행스러워하며 당시 한국 남자대표팀 감독에게 “이런 날씨가 계속 유지가 돼야 할 텐데요”라고 하며 덕담을 전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 감독이 이런 뜻밖의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저는 비가 쏟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누구나 잘 쏠 수 있지요.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야 비로소 선수들의 실력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너무 감동적인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만큼 자신 있다는 말이지요. 이것은 진짜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광야도 그렇습니다. 진짜 실력은 여기서 발휘됩니다. 그러므로 근본 없는 사람들이나 두려워하지, 진짜 실력 있는 사람들은, 아니 그 동안 실력을 부지런히 키워온 사람들은 결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도 그랬습니다. 꽤 신실하고 하나님을 위해 목숨 건 것 같지만 광야로 나갔을 때 밑바닥이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때 “넌 이래서 실격이야!”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그들을 훈련하여 거기서부터 다져가고 빚어 ‘진짜’로 만들어 가십니다. 과연 광야의 시간과 훈련 없이 위대하게 쓰임 받은 하나님의 사람이 있었던가요? 우리가 손에 꼽을 만한 아브라함, 요셉, 모세, 다윗, 엘리야, 이사야, 예레미야, 다니엘, 사도들과 초대 교회 성도들, 사도 바울, 심지어 예수님도 모두가 다 험난한 광야를 경험하며 하나님의 계획을, 하나님의 사명을, 하나님이 온 인류에게 주실 축복을 이루고 누리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축복 주시고 크게 사용하실 인생들은 반드시 하나님이 광야로 부르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024년 한 해를 시작하며 모두가 꽃 길만 걷기를 희망할 것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좋아해 할, 그리고 모두가 즐겨 할 그러한 꽃 길 속에서는 우리의 ‘정체’는 그저 수면 아래로 감춰져 고만고만한 삶을 살아가게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다 막상 고난이 찾아오면, 광야에 들어서면 여지없이 우리의 무력한 ‘정체’는 드러나고야 말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 하여도 너무 실망하거나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광야에서 우리는 우리의 진짜 실력을 키워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진짜 ‘정체’가 무엇인지 발견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손 안에 놓인 믿음의 성도는 그렇게 광야에서 자신의 ‘정체’를 발견하고 성장해 가게 될 것입니다. 나의 정체를 도무지 모른 체 인생을 살지 마시고 때로 광야에 내몰리는 순간 속에서 여러분의 ‘정체’를 제대로 발견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하나님의 사명을 발견하는 축복된 시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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